
만리장성을 오르며...
만리장성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 유적이자 중국 고대의
중요한 군사시설로 방어용 성벽이다. 사실 10리는 4km로, 계산적으로
만리(萬里)는 4,000km가 되지만 만리장성은 4,000km가 훨씬 넘는
거리이다.
그러므로 만리장성이라는 말은 긴 성(城)을 강조하기 위한
단어이다. 그리고 모택동 이 만리장성에서 일찍이 “장성을 오르지
않고서는 사내대장부라고 할 수 없다
(不到長城非好漢)”이라는 말을
남겨서 유명하고, ‘달에서도 유일하게 보이는 인공 건축물‘이라는
말이 있지만 달에서는 만리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만리장성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1987년 등록되었다.

만리장성 위치도
만리장성은 동쪽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 자위관[嘉峪關]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져 있으며하지만 더 있었을 거라고 추정되며 연장된
길이 2,700㎞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 길이가 약 5,000~6000㎞에 이른다.



""不到長城非好漢(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호한이 될 수 없다)""
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진의 강력한
통일제국체제가 낳은 상징적 산물입니다.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약 75km쯤 떨어진 곳에 교통이 편리하다는 뜻인 ""사통팔달""에서
이름이 유래한 ""팔달령""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의 만리장성은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어 만리장성 중에서도 대표적인 구간으로
대부분의 만리장성 관광은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1,015미터이며, 산세가 험준한 편입니다.
장성 위에서 구불구불 기복이 심한 산세를 따라 멀리까지 뻗어있는
견고한 성을 바라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지기 시작한 장성은 20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 길이가 5천만m에 이릅니다. 장성은 북방의 유목민족들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시베리아의 혹한으로 더 이상 북쪽으로는 진출할 수 없게 되자
남쪽을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자가 풍부한
농경지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만리장성은 단순히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막인 동시에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습니다.
오늘날 말하는 서쪽 감숙성의 가욕관(嘉浴館)에서
시작하여 요녕성 압록강변에 이르는 635만m 길이의 성벽은 대부분
명나라때 지어진 것들이며, 만리장성에 설치되어 있는 가드레일과
케이블카는 좀 더 편하고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제는
흘러간 역사의 자취가 된 장성은 세계 7대 건축물, 8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세계적인 유적지입니다. 또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 거대한 명성을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입니다.



만리장성은 한번에 쌓아진 것이 아닙니다. 수십, 수백, 수천년에
걸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사실 관광지로서
유명한 오늘날 우리가 만리장성이라고 하는 것은 진나라때
쌓은 장성 유지가 아니라 명나라때 수축,
보완되어 완성된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성벽이나 기타 시설물 등 보이는 광경만을 보고
진나라 특히 시황제의 업적이라고들 하는데요...
이것은 사실과 많이 다릅니다.
현재의 만리장성의 기본적인 바탕은 물론 진제국 시기에
흉노족을 비롯한 내몽고지역의 북방유목민족의 침입을
견제하고자 시황제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진제국 시기의 만리장성조차 원래는 춘추전국시대,
특히 전국시대의 조나라와 연나라의 장성을 서로 연결시켜
보완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만리장성과 현재의
만리장성은 전반적인 위치는 대략 일치하고 있으나
전체 구간 길이 그 동,서,남,북의 양끝과 가지를 이루는
성곽들의 구체적인 위치는 상당히 다릅니다.








특히 만리장성의 동단은 현재의 하북성 발해만의
산해관입니다. 중국에서는 요령성 동부의 단동지구까지
포함시켜 고대부터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린 것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요동동부지역에 있는 성곽은
이전 시기에 있던 성곽을 구간별로 연결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진시황제때의 만리장성과는
무관합니다.
심지어 중국인들은 한반도의
청천강유역까지 만리장성이 닿아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곳의 관광가이드들은 한국인을 비롯한
세계의 관광객들에게 마치 고대부터 중국의 만리장성이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설명하고 있고,
많은 한국인들조차 별다른 생각없이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마치 사실인 것처럼 알고 있다는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사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수축한 이유는 북방의
흉노족을 방비하고자 함도 있었지만 무리한
통일전쟁과정에서 진나라가 복속한 지역의 주민들을,
특히 진나라에 저항하다가
투옥된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을 그냥 처형하기보다는 그들의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장성을 쌓고, 도로를 정비하는
등의 국가사업 달성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즉 장성도 쌓고 불순세력(?)을 제거하는 1석 2조의
정책을 추진한 것이죠... 따라서 수백만의 주민들이
죽어가는 것은 오히려 시황제에게는 반가운 일이었고,
때문에 성을 쌓다가 부상당한 사람들까지 모두
처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만리장성이란 진시황제의 업적이라기 보다는
수백만 주민들의 피와 땀으로서 만들어진
"고통의 성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이후로도
만리장성은 지속적으로 보완되는데 마찬가지로 수백,
수천만의 주민들이 강제로 사역당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외적의 침입으로 부터 가족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실권자에 반대하는 '역적'이라는
오명하에 죽어간 것이죠. 장비로도 쌓기 어려웠을 것
같지만 수백년에 걸쳐 보완된 것이니 그리 또 어려운
일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름없이 죽어간 수천만
주민들의 '한'으로 이루어진 성벽 벽돌 하나하나에는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리장성이
위대하다는 것은 강제일망정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
결국 달에서도 보일정도의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어
놓게되었다는 점이지 결코 진시황제의 "업적"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