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화가인 프랑스의 장 프랑소아 밀레 는 우리들에게도 너무 친숙한 그림으로 옛날 이발소 마다 걸려있어 이 그림이 명작인지 아닌지 사람들은 구별이 어려웠었다. 이 그림에도 애틋한 사연이 있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가난한 농부의 삶으로 해서 화가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런지.....
1857년 저녁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다. 캐다가 만 감자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교회당이 정지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지난 지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됐다. 1000프랑을 지원한 것이 국부(國富)를 일구어낸 것이다. 그러나 부자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가 자존심이 상한 채 주저앉아 있을 무렵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만종' 을 다시 사들인 것이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했다.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밭일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다.
그 시대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 것이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이다.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보게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했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그 불안감이 얼마나 집요하게 그의 뇌리에 들러붙었는지 달리는 오랫동안 그 까닭을 알아내려 했고, 그에 관한 책을 쓰기까지 했다. 그는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감자자루를 어린아이의 관으로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수십 년 후, 이러한 그의 투시력은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정확한 관찰이었음이 밝혀졌다. 루브르 미술관이 자외선 투사작업을 통해 그 감자자루가 초벌그림에서는 실제로 어린아이의 관이었음을 입증한 것이다. 현실 생활에는 서툴렀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삶에 대한 투시력을 갖게 되었다는 그의 고백은 진실이었던 것이다.
<이의일/세종정보기술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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